한국판 녹색투자금융공사 발판 마련
민간 리스크 완화해 투자 촉진…녹색시장 확대 기여
국제사회에서 기후변화는 환경문제가 아니라 경제금융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환경개선 목표에는 이견이 없지만 이를 위한 자금마련이 항상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녹색금융을 위한 투자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석탄발전에 투자하는 등 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14일 그린뉴딜 금융지원 특별법 제정 전문가 토론회가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의실에서 열렸다.
토론회는 △박형건 녹색기후기금(GCF) 팀장 △이예림 숙명여대 기후환경에너지학과 석사과정 △윤용희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의 발제와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 △임대웅 에코앤파트너스 대표 △김수호 금융위원회 글로벌금융과 과장 △전응철 코람코자산운용 대표이사의 토론으로 진행됐다.
리스크 완화한 민간 투자 유도
박형건 녹색기후기금 팀장은 “과거 녹색펀드 관련 실적을 보면 저조한 투자율을 보인다”라며 “이번 발표는 과거에 어떤 사례가 있었는지와 한국금융위기에 무엇이 적합할지 공유하기 위함이다”라고 밝혔다.
박형건 팀장이 밝힌 과거 실패요인은 녹색사업에 대해 금융적인 관점에서만 접근한 전문성 부족과 10~20년 장기적인 전략이 필요한 녹색산업에 펀드 운용 시 7~8년 만에 청산을 해야 하는 장기전략 부재 문제를 들었다. 또한 정부 및 공공기관과 사업실행 담당 민감금융기관의 이해 상충으로 인한 이중 수수료 발생, 그린뉴딜 지원을 위해 수조원 규모의 돈이 필요하단 점을 문제 삼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제안으로 제안한 한국녹색투자금융공사는 정부와 공공기관이 출자와 설립을 주도한 뒤 추가로 민간·정책금융기관에서 자금을 출자하는 방식이다. 기존의 정책금융기관과 민간이 경쟁하는 구조가 아닌 민간의 리스크를 완화시켜줌으로써 투자를 일으키는 것이 핵심이다.
한국녹색투자금융공사는 국내와 해외로 구분되는데 국내에서는 지자체, 지역개발공사 등과 합작으로 설립해 저소득층 우선지원 및 지역특화 소규모 프로젝트를 담당한다. 또한 지역거점 대학과 연계해 인재양성 및 일자리 창출을 유도한다. 해외에서는 산업은행이 이행기구로 등록돼있어 중장기적으로 해외사업을 지원하는 모델을 고려할 수 있다.
한국녹색투자금융공사의 출자 및 자금조달방안으로는 △정부 및 공기업(한전·산은·수은 등)과 민간기업 출자 △연간 3,000억원 발생하는 것으로 예상되는 배출권거래제 유상할당 수입 활용 △녹색채권과 같은 자본시장을 활용한 방안 등이 제시됐다.
이어 박형건 팀장은 해외 사례를 들어 한국에 적합한 모델을 검토했다. 일본의 경우 탄소세 일부를 자본금으로 신재생에너지사업 지분에 1억달러 이상을 투자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관련법안 제정 및 보완, 담당 부서 설치, 신속한 프로젝트 진행 등으로 녹색금융 활성화를 진행 중이다.
박형건 팀장은 “해외 녹색금융기관들이 매년 모여 실적을 발표하는데 올해 6월까지 연간 4천만톤의 온실가스 감축과 1.9배의 민간투자 창출을 달성했다”며 “1.9배의 민간투자 창출이란 녹색금융이 1을 출자할 때 민간에서 1.9를 끌어들여 총 2.9의 추가자본을 일으키는 것으로 녹색금융기관 설립의 운영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기후변화·일자리 두 마리 토끼 잡을 것
이예림 숙명여대 기후환경에너지학과 석사과정생은 ‘청년이 직접 본 미국의 녹색투자금융공사’를 주제로 발표했다.
이예림 대학원생은 “미국 녹색투자금융공사는 다른 말로 그린뱅크라고 하는데 기후변화를 보다 경제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자 녹색산업 활성화를 위한 필수적인 기관”이라며 “대외활동을 통해 미국 동부에 있는 3개의 그린뱅크와 그린뱅크 설립과 운영을 돕는 환경보호 시민단체, 비영리 컨설팅기관, 주정부기관 등을 방문하고 배울 기회가 있었다”고 전했다.
그린뱅크의 경우 공공자금만을 투입해 운영하는 펀드와는 달리 공공자금을 통해 녹색투자에 대한 위험도를 낮추고 민간투자를 유인한 뒤 이를 통한 수익으로 재투자하는 순환구조를 가진다. 결과적으로 같은 자본조건 아래에서 더 빠르게 녹색시장 규모를 키움과 동시에 세금도 거둘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그린뱅크의 투자프로세스를 기반으로 각 지점의 그린뱅크들은 자금을 조달하는 것뿐만 아니라 재생에너지 인프라 수요층의 확대에도 힘쓴다. 워싱턴 그린뱅크는 소득이 낮은 집단을 대상으로 재생에너지는 비싸고 부유층만 누릴 수 있는 게 아닌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 인식을 바꾸는 데 노력하고 있고 코네티컷 그린뱅크의 경우 녹색산업 이해도가 높지 않은 일반 회사나 은행에게 녹색산업에 대한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투자를 이끌어내고 있다. 또한 코네티컷 그린뱅크는 마을단위 워크샵, SNS 홍보 등을 통해 재생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수요를 이끄는 것에도 힘쓴다.
뉴욕 그린뱅크는 3년만에 순수익을 창출했을 정도로 빠르게 녹색산업 투자에 성공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환경기술과 금융분야 전문가들의 협업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녹색분야 취업률은 20% 미만으로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이다.
이예림 대학원생은 “전체 취업률 중 녹색분야 비중이 낮은 이유는 단지 취업을 못 해서가 아니라 취업할 곳이 없기 때문”이라며 “녹색투자금융공사는 고용창출과 기후변화 대응을 동시에 이룩할 수 있는 훌륭한 대안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적 고려사항 제시
윤용희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녹색투자금융공사법 제정 시 고려사항에 대해 발표했다.
윤용희 변호사는 “금융지원 특별법이 진행된다면 법적으로 공사를 만드는 것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얘기하고자 한다”며 “이러한 녹색투자금융 관련 법과 기관들이 전에 없었던 게 아니라 미약하지만 어느 정도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제정할 특별법을 이와 모순되지 않게 통합하는 것에 중점을 뒀다”고 밝혔다.
윤용희 변호사는 위원회 구성과 관련해 “민간에 전문가들이 많고 그들의 의견이 필요하기 때문에 민간위원을 절반 이상 구성하는 것을 고려했다”며 “공단의 법적·회계적 투명성을 위해 변호사와 회계사 각 1인씩 포함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사에서 자금을 공급하는 사업의 유형으로는 △‘그린뉴딜 기본법’ 명시사업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 명시 녹색기술·녹색산업·녹색제품 및 녹색산업투자회사 관련분야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 명시 에너지 관련분야 △‘에너지이용 합리화법’ 명시 에너지절약 전문기업 분야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 명시 배출권사업 분야 △대통령령 지정 신성장동력 육성 및 지속가능한 성장촉진 분야 등을 들었다.
또한 공사에서 사업에 자금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자금대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명시 증권투자 △채무보증 △신용위험 유동화 △정부, 한국은행 등 금융기관 자본 차입 △외국자본 차입 △녹색금융채권, 증권 및 채무증서 발행 △녹색투자금융제도·산업금융제도·정책금융제도 조사 및 연구 △정부 위탁 업무 등을 들었다.
윤용희 변호사는 “자금을 공급하기 위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자금공급대상의 환경·사회·지배구조 등의 요소를 포함했으면 한다”며 “정부 세금이 들어간 공사가 이러한 요소들을 반영한다면 녹색투자금융공사가 사회 저변에 확산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발제 이후 토론에서 임대웅 에코앤파트너스 대표는 “우리나라 현실을 들여다보면 녹색금융을 관장하는 기업들의 인식수준이 굉장히 낮다”라며 “전 세계 중앙은행·금융시스템·금융감독원들이 녹색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모인 기구가 NGFS인데 우리나라에선 지난해 12월 말 한국은행만 참가하고 있어 녹색금융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른다”고 한계를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지자체 녹색투자금융공사를 추진한다 해도 전문성 있는 인력들이 흩어져있어 역량이 부족하다”며 “이것이 배제되면 어떤 프로젝트가 녹색인지 알 수 없을뿐더러 탄소배출권을 거래할 때 외국 컨설팅회사에 막대한 돈을 지불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대웅 대표는 “인재를 키워내면 돈이 모이고 지속가능한 금융허브가 생겨 그린뉴딜까지 이어질 것”이라며 “현재와 같이 역량을 분산시키지 말고 집중적으로 인재를 키워 대대적으로 인프라를 바꾸고 일자리를 만드는 선순환 구조로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김수호 금융위원회 글로벌금융과 과장은 “NGFS 관련해선 유럽과 미국의 인식은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전 세계적으로 합의된 의사가 없는 상황에서 금융위원회 입장에서는 기구 가입 시 도움 되는 게 아니라 여러 의무사항이 발생해 국민세금이 더 지출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재정은 한 번 돈을 주고 나면 좋은 목적으로 쓰고 책임을 묻지 않지만 금융은 원금을 회수하고 선순환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신용도가 높은 기업에 투자를 하게 된다”며 “녹색투자금융공사의 공적성격 감안 시 충분한 재원확보가 선결될 필요가 있고 원금회수를 전제로 투자할 기업들의 선별과정에 대해 많은 고려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또한 김수호 과장은 특정분야 지원을 위한 녹색투자금융공사 설립 시 리스크를 강조하며 “녹색금융이 태양광, 풍력과 같은 일부분만을 지원할 경우 위기가 한번 발생하면 다 같이 악화될 우려가 있다”며 “지원대상이 어느 한 분야로 집중될 경우 리스크가 커지기 때문에 이에 대한 부작용도 고려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전응철 코람코자산운용 대표이사는 “녹색사업은 긴 시간이 요구되는 반면 증권회사 같은 경우 짧은 시간을 요구한다”며 “녹색사업 수익화에 시간이 오래 걸리면 국가와 민간에게 위험이 되기 때문에 녹색투자금융공사가 성공하기 위해 정부는 녹색산업을 지원하는 금융과 같이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전응철 대표는 영국의 사례를 들어 “영국은 신재생에너지를 주요 전원으로 설정했지만 제조기술이 거의 없어 경제적·산업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며 “이에 따라 외국의 기술과 자본이 사업에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초기단계라 투자 및 금융이 원활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은 GIB(Green Investment Bank)를 설립해 민간의 리스크를 흡수함으로써 신재생에너지 확산이라는 공적목적을 달성했고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적인 금융그룹인 맥쿼리에 인수됐다.
전응철 대표는 “영국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반복되고 있다”라며 “녹색투자금융공사가 그린뉴딜의 새로운 금융엔진으로 성공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예진 기자 yjjung@khar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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