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N] 최영수 교수님 /기후 위기와 기독교의 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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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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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9 19:21
기후위기와 코로나상황
최근 언론을 통해 기후변화 관련 기사를 보면 “기후위기”에 대해 표현하는 빈도가 전보다 늘어나고 있다, 그러면 왜 오늘날을 기후위기라고 하고 있는가? 그 내심에는 실제 기후위기가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크고 그런 맥락에서 위기를 피하려면 보다 많은 분의 공감을 얻고자 하는 의도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우리가 격고 있는 코로나 방역은 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전염병으로 인해 다가온 새로운 상황이다. 누구든지 집에서 외부로 나오는 순간부터 마스크를 착용하면서 주변의 각종 물건을 만지는데에도 신경을 쓰고 심지어 손 소독제를 곳곳에 비치하여 소독제를 바르고서야 조금이라도 안심을 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이것은 위기상황의 한 예로 보는데 크게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면 코로나 상황(COVID19)은 기후위기와 관련이 있는가? 기후라고 하면 지속적이고 평균적인 기상현상을 이야기 한다. 그러면 기상은 강수, 바람, 구름 등 대기에서 일어나는 각종 현상을 표현한다. 기상과 기후는 모두 환경과 관련된 현상이다. 코로나 상황은 박쥐등 야생동물이 인간과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졌는지, 박쥐와 함께 사는 각종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접근할 가능성과 연관이 있는데 첫째, 인간의 환경파괴로 인해 박쥐서식처가 사라져서 인간이 사는 곳과 가까워지는 경우 둘째, 지구의 온도가 상승하는 과정에서 박쥐의 서식처가 열대지역에서 북반구 온대 지역으로 올라오는 사례가 목격되고 있다는 점에 기후변화의 영향과도 무관할 수 없다고 보인다
환경의 변화와 기후위기
기후환경문제에 대한 인간의 자각
유럽등 서구사회는 이미 18세기 후반 산업혁명을 주도하여 사회적인 변화와 경제적인 성장을 급격히 가져왔고, 이로 인한 지구환경에 미치는 영향과 대기오염과 폐기물 등 부작용을 느끼면서 미래에 대해 염려를 하는 지식인들이 늘어나면서 환경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었다. 특히 생태계에 대한 경종을 울린 계기는 미국에서 1962년 레이첼 칼슨이 “침묵의 봄”이라는 책을 발간하면서 단초가 된 것으로 보인다. 봄이 되었음에도 늘 들려오던 아름다운 새소리가 사라짐으로써 인간이 농업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사용한 살충제와 제초제가 결국 생태를 파괴하고 환경재앙을 가져온다는 경종을 울리게 되면서 환경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유럽 로마를 중심으로 환경 폐해의 심각성과 과도한 성장이 가져다주는 환경문제에 대해 인식을 하면서 보호 운동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1972년 로마클럽에서 “성장의 한계”라는 보고서를 제출하여 우리가 사는 지구는 산업과 오염 자원의 약탈이 지속하면 성장의 한계에 다다라서 돌이킬 수 없는 문제가 야기될 것이라는 경고를 하게 되었다.
1972년 스톡홀름에서 열린 UN 세계인간환경회의에서 오직 하나뿐인 지구의 환경파괴와 천연자원고갈에 대해 우려하며 지속가능성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였고, 특히 1992년 브라질 리우데나자이루에서 연린 환경회의에서 UN기후변화협약(UNFCCC:UN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 사막화방지협약(UNCCD:United Nations Convention to Combat Desertification), 생물다양성협약(CBD: Convention on Biological Diversity, CBD)등 주요 협약이 이루어지므로 인류를 위한 새로운 환경개선 노력과 자각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UNEP와 세계기상기구(WMO : World Meteorological Organization)는 기후변화에 대한 상황을 연구하고 과학적 견해를 받기 위하여 1988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를 설립하고 기후변화대응을 위한 과학적 평가를 하게 된다.  IPCC 5차 보고서와 기후변화에 대한 상황을 보면 기후위기에 대한 공감에 도움이 될 것이며 주요요약은 다음과 같다.
기후시스템에서 온도상승 명백함
대기와 해양이 따뜻해지고 있음
눈과 비의 양은 줄고 해수면 상승
온실가스 농도는 증가
아울러 2021년 4월에 제시한 WMO의 2020지구기후보고서에 의하면 코로나 상황으로 경제활동이 위축되었음에도 기후변화의 기세는 가속화되어 이산화탄소 농도는 410ppm을 초과했고 온도는 산업화 이전대비 1.2 °C 더 높았다고 발표하였다
기후난민, 환경 난민등 소외층 발생
세계적으로 최근 난민 문제가 이슈가 되어 유럽의 정치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러면 난민은 전쟁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전쟁이 일어난 배경에는 삶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곤 한다. 예를 들면 기후변화와 환경변화가 결국 시민들을 난민으로 내모는 경우가 있다. 시리아의 경우에도 가뭄으로 농장을 잃은 많은 사람이 도시로 몰리고 도시는 물 부족과 충분한 일자리가 없고 이로 인해 분쟁이 야기되고 사람들은 난민이 되어 사는 곳을 떠날 수밖에 없는 형편이 될 수 있다
앞으로 기후변화로 인해 해안가가 유실되고 살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는데 섬나라 시민들은 이런 위험으로 결국 난민이 되고도 한다. 예를 들면 섬나라인 투발루는 해발고도가 2m가 안 되어 해수면이 상승함에 따라 섬들이 물에 잠기고 결국 살기 어려워 인근 국가로 이주해야 하는 기후난민이 되는 상황을 알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어떠한가? 기후변화로 야기되는 극심한 기상 현상(extreme weather)이 증가하므로 인해 강추위, 폭설 등이 겨울에 발생하고, 여름에는 폭염과 폭우 등이 전보다 종전수준을 능가하는 위협이 다가오기도 한다. 이로 인해 추운 날씨에도 원하는 난방을 하지 못하거나 여름 폭염에도 대피하거나 냉방시설이 없는  등 이러한 여건이 확산할 여건에 놓이게 된다. 다양한 형태에서 기후변화로 재난을 당하기도 하고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기후환경 위기와 기독교인의 책무
기독교는 여러 형태의 교단이 있고 각기 추구하는 방향, 교역자의 양성 방법 등이 다르므로 이단을 제외하고는 다른 교단의 모습이 “틀렸다”고 하는 방식은 최소한 지양해야 하고 “다르다”는 표현이 적절한 것이다.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일 속에는 세상 지식으로 볼 때 상식에 모자라는 일들이 있는 것이 아닌지 이런 점이 있다면 어떻게 시스템적으로 조정이 가능한지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책무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이런 점이 극복되어야만 그다음으로 책무를 이야기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문이나 인문계 학생 중에서 왜 이런 학문을 선택하였냐고 물어보면 이런 분야가 자기의 적성에 맞아서 한다고 하는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수학이 싫어서 그 학문을 피하려다가 이런 학문을 한다고 하는 때도 있다. 최근에 코로나 상황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RNA DNA 등 생물학 관련 단어들을 쉽게 접하는 경우가 있다. 대기오염을 이야기하면서 PM2.5 PM10 등 미세먼지의 크기에 관한 이야기도 접하게 된다. 기후변화 대응을 하는 과정에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아니면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하는 수단이 무엇인지? 쉽게는 재생에너지(자연에너지) 사용과 에너지 효율화를 시작(예: 형광등의 LED 교체, 단열시공)으로 기후변화대응에 기여하는 모습이 요구되어 진다.
온실가스의 농도 등 과학적인 상식을 요구하는 분야가 생활 속에 쉽게 접할 수 있다. 이제 한 분야의 학문만 접하기보다는 인접 학문과의 연계,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이 상호 접속되는 분위기를 사회가 원하는 것처럼 기독교인들도 이에 발맞추면 기후변화에 대응하려는 과학적 상식, 폐기물을 처리하는 환경적인 과정 등 이해도 도움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기후위기는 단지 나 혼자서 극복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같은 공기를 마시는 지역의 누군가와 협력하고 기후재난을 막으려는 데에는 광범위한 공동의 노력의 요구 떄문이다.
교회 생활도 내 교회 중심으로 고립되기보다는 적어도 교회 인근 교회를 배려한다던가 그 교회의 비전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우리교회와 공감할 부분이 없는지 고려해 보는 일종의 배려 즉 노력이 있으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협력의 영역은 인근 교회 일수도 있고 그것은 주변의 공적 영역 뿐 아니라 여러 사회적 기구와 단체와도 서로 협력하려는 모습이 있을 수 있겠다. 특히 인근 지역의 교회들과 협력하여 구제 활동이던, 환경에 기여하는 활동이던 서로 협력하는 모습이 요구되어 진다고 하겠다. 즉 교회로서 이웃을 잘 돌보지 못했다면 이에 대한 반성과 회개하는 노력이 먼저 이루어지고 이어서 기후환경 변화 속에 주변과 함께 힘을 모우거나 이웃을 위해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돌아보는 것은 기독교적인 배려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불우한 이웃 등 주변의 돌아보는 일에는 종전에는 식료품이나 금전적인 지원을 하는 방법을 통해서 기여해 왔다. 이제는 기후환경의 변화로 인해 이런 상황에 잘 대처하기 어려운 분들은 삶의 여건이 종전보다 더 어려워진 분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추운 겨울과 무더운 여름에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는지 형편이 어떤지에 대하여도 돌아볼 영역이 더 넓어진 것을 알 수가 있다. 범위를 넓혀서 선교의 헌장에서 이번에 코로나로 인해 활동이 제한되는 선교사님들의 소식을 접하고 여러 고민과 기도로 힘을 보태고 있다.
장기적으로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으로 인해 더욱 피해가 예상되는 국가와 지역에 지금부터 준비하여 기후변화 적응에 힘을 높이는 활동이 요구된다고 본다
솔선하는 자연스러운 변화
기독교인의 책무라는 단어가 내게는 부담을 느껴져서 차라리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일어나기를 기대해본다 즉 기후환경에 대해 인식을 하므로 지구 온도상승과 온실가스 농도가 급격히 증가한 상황을 잘 이해하면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 그중에 내가 나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기 시작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내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 중에서 채식으로 전환한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 자신도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 학생은 오늘날 환경적 상황을 이해하다 보니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이 육식을 중단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실행해 오고 있다고 하였다. 심지어 가족 중에서 혼자 하여 여러 불편함이 있다고 이야기도 하였다.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하면서 초록색 텀블러를 구입해서 어디는 가지고 다닌다. 물론 교회 갈 때도 수업을 할 때도 외부에서 발표할 때도 그리고 초록색 넥타이를 매기 시작했다. 많은 것을 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 한다면 할 수 있는 자그마한 것을 하면서 다음 단계를 모색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표절에 대하여 논문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매우 강조한다. 하지만 고려해야 할 윤리적인 영역은 매우 넓다. 잠언 1장에 지혜롭게, 공의롭게, 정의롭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하며.... 라는 말씀이 다가오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처럼 우리에게 다가오는 진리가 말씀을 통해 우리 마음에 접해진다.  연구 과정에서 이야기한다면 우월한 지위에서 학생들을 연구에 참여하게 강요하는 것은 윤리 위반으로 바로 지적이 된다. 부작용이 있음에도 그것을 의도적으로 숨기고 참여하도록 동의를 받는 것도 informed consent 위반으로 엄격히 다루어진다. 이런 사례들이 기독교계나 교회에는 일어나고 있지는 않는지? 우리가 책무를 이야기하기에 앞서서 사회적인 윤리보다 더 강조된 윤리적인 훈련이 필요하지는 않는가 생각해 보게 된다.
이런 위기 상황이 아니어도 우리는 호흡하듯이 주님과 교감을 하면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연약한 존재라는 점을 늘 느끼고 있다. 이제 우리 인류가 원인을 제공하여 우리의 자연 지구가 점점 우리를 위협하는 존재로 다가오고 있는 상황에서 이전 보다 더욱 주님에게 물어보고 지혜를 간절히 구하면서 이런 어려움을 헤쳐나가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출처 : 기독교종합신문_CSN-TV(http://www.pota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