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유승직교수님/나무 심기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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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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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흡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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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양군 함양읍 죽림리 삼봉산 금강소나무 숲. 산림청 제공
1971년 4월5일 26회 식목일을 맞아 박정희 대통령이 나무를 심었다. 당시 전국적으로 통일동산만들기 범국민운동이 진행되고 있었다. 박 대통령은 “지금까지는 벌거숭이산에 나무를 심어 푸르게 하자는데 주안점이었지만 앞으로는 더 나아가서 산림을 경제적으로 이용함으로써 경제발전과 국민소득에 기여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50년이 흘렀다. 조림의 중요성은 여전하지만 민둥산, 소득증대 같은 개발시대 용어는 자취를 감춘지 오래다.
식목일인 지난 5일 문재인 대통령은 서울 마포구 복합화력발전소를 찾아 회양목 묘목 4그루를 직접 심었다. 마포 복합화력발전소는 우리나라 최초의 석탄화력발전소가 있던 자리다.
문 대통령은 “(나무 심기는) 지구온난화에 대한 대책, 탄소중립화 대책으로 필요하다. 발전, 교통수단, 산업, 가정, 학교에서 탄소배출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기 때문에 또 하나의 중요한 방법이 나무를 많이 심어서 탄소를 흡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도시숲을 늘려나가는 것이 미세먼지 대책으로도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이제는 지구온난화, 탄소배출을 걱정해야 하는 기후위기 시대다. 지구의 허파라는 아마존 밀림 파괴가 글로벌 이슈로 부각한지 오래다. 내가 오늘 심은 나무 한그루는 온실가스와 대기오염 물질을 줄이는 데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탄소흡수 효과 분명 있지만 “만병통치약 아냐”
나무가 대기오염 물질과 탄소를 흡수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에는 사회적 공감대가 높은 편이다. 산림청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지난달 22~23일 성인 10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96.6%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나무심기가 중요하다고 답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5일 마포구 서울복합화력발전소에서 열린 제76회 식목일 기념행사에서 학생들과 나무를 심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나무로 흡수되는 탄소나 대기오염 물질의 양은 인간이 배출하는 양에 비하면 미비하다. 산림청에 따르면 나무 한 그루는 연간 이산화탄소 2.5t과 미세먼지 35.7g을 흡수하고 산소 1.8t을 내보내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지난 1월 산림청은 2050년까지 나무 30억그루를 심어 연간 3400만t의 탄소를 줄인다는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국내 연간 탄소배출량 7억t의 5%에 수준이다. 나무가 대기오염과 지구온난화에 도움이 되는 것은 맞지만, 그것만으로 효과를 보기엔 역부족이라는 의미다.
나무 심기가 기후변화 대응의 ‘한 조각’일 뿐 만병통치약은 될 수 없다는 의견이 있다. 지난해 5월 미국 캘리포니아대(산타크루즈) 숲 복원 전문가 카렌 홀 교수는 <사이언스>(Science) 논평에서 “(나무 심기는) 퍼즐의 한 조각일 뿐이다. 나무 심기로 기후변화에서 빠져나올 수는 없다”고 말했다. 미세먼지 전문가인 김동술 경희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식물에 의한 미세먼지 흡수는 사업장에서의 배출량을 저감하고 규제 대상 대기오염 물질을 발굴하는 것에 비하면 그 효과가 소량”이라고 말했다.
계획 없이 심는 나무는 도움 안 된다
나무와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턱대고 나무 심기를 장려하는 것은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난해 6월 미국 스탠포드대 환경연구소, 캘리포니아대(산타바바라), 칠레 콘셉시온대 산림과학부 등은 공동연구를 통해 이런 사례를 확인했다. 연구팀은 칠레 등 남미 국가의 대규모 조림사업을 분석했는데, 이들 지역에서 조림사업으로 심은 나무들은 수익성 있는 과일나무에 집중됐다. 지역 특성에 맞는 수목종이 아니다 보니 토종 숲보다 탄소흡수 효과가 약했고 생물다양성을 확보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카렌 홀 교수도 <사이언스> 논평에서 이런 위험성을 경고하며 ‘잘 계획된 나무 심기’를 위한 4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먼저 나무를 새로 심거나 이식하는 것보다는 온전한 숲을 보호하고, 나무 심기를 다양한 해법의 작은 부분으로 간주하며, 나무 심기를 통해 줄일 수 있는 탄소량은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이오매스도 탄소를 배출한다
나무는 살아서 탄소를 흡수하는 효과가 있지만 죽어서는 바이오매스로 쓰인다. 목재를 잘게 부순 칩이나 목재를 갈아서 담배꽁초 모양으로 성형한 펠릿 등을 태워 에너지원으로 쓰는 것이다. 땅 속에 갇혀있던 화석에너지를 캐내 태우는 것과 달리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늘리지 않아 ‘탄소중립적 에너지원’으로 본다.
지난 2월 국내외 과학자 500여명이 세계 정상들에게 “바이오에너지는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없다”며 “바이오에너지 생산에 보조금을 지급해선 안 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보냈다. 국내외 과학자 500여명이 청와대로 발송한 서신 갈무리. 기후솔루션 제공
김수진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1kW의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바이오매스의 양과 석탄을 비교해봤을 때, 초기 수십년 간은 바이오매스의 탄소 배출량이 석탄보다도 높다”고 말했다.
바이오매스도 탄소를 배출한다
전문가들은 “나무 심기의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면서도 “에너지 전환과 배출 저감 등 탄소 감축 조치와 체계적으로 병행돼야 한다”고 했다. 유승직 숙명여대 기후환경융합학과 교수는 “(탄소 감축은) 종합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먼저 에너지 사용량을 최소화하고 그럼에도 써야 하는 에너지는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고, 그래도 나오는 탄소에 대해 산림으로 흡수해야 한다. 어느 하나로 연간 7억t의 탄소를 다 줄일 수 없다”고 말했다. 김동술 교수는 “인간이 배출한 오염물질은 인간이 능동적으로 감축해야 한다. 대기오염 물질을 규제할 정책과 법을 만드는 게 훨씬 효과가 큰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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