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극한 폭우 반복되며 한반도 초토화인명 피해에 농축산 분야 피해 '눈덩이'재난 복구와 물가 관리에도 비상등 켜져전문가 "전방위적인 대응 체계 마련해야""경기나 경제성장률에도 부정적 영향"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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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일 오전 경남 산청군을 가로지르는 산청대로에 19일 폭우로 산사태가 발생하자 관계자들이 복구작업을 펼치고 있다.ⓒ뉴시스
전국을 덮친 기록적인 집중호우와 뒤이은 폭염 특보로 한국이 '재난의 일상화' 시대에 접어드는 모양새다. 집중호우와 폭염이 번갈아가며 이어지는 이상기후의 악순환이 한반도를 강타하면서 국가 재정과 민생 경제가 동시에 휘청이고 있다. 연이은 기상 이변 속에 반복되는 재난 복구와 물가 대응에 재정부담도 커지고 있다.
지난 16일부터 내린 폭우와 산사태로 20일 오후 9시 기준 18명이 숨지고 9명이 실종됐다. 1만4000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한 가운데 사망자는 산사태가 일어난 경남 산청에서 가장 많이 발생했다.
지역별 사망자는 경남 산청이 10명, 경기 가평 2명, 충남 서산 2명, 경기 오산·포천, 충남 당진, 광주 북구 각각 1명이다. 실종자는 산청과 가평 각각 4명, 광주 북구 1명이다. 현재 구조 작업이 진행 중으로 인명 피해는 더 늘어날 수 있다.
이번 호우로 전국 15개 시·도에서 9887가구, 1만4166명이 대피했다. 시설 피해는 전날 오후 6시 기준 도로 침수와 토사 유실, 하천시설 붕괴 등 공공시설 피해가 1999건, 건축물과 농경지 침수 등 사유시설 피해가 2238건으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이번과 같은 폭우와 폭염이 상시적으로, 더 잦은 빈도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경고한다. 기후변화의 변동성이 갈수록 커지면서 겨울철에도 갑작스러운 혹한이 닥치는 등 극단적 기상이변이 일상처럼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승직 숙명여대 기후환경융합학과 교수는 "기후변화 변동성이 커지는 상황인만큼 피해 규모는 과거보다 훨씬 더 커질 수 밖에 없다"며 "복구 중심 대응에서 벗어나 보다 정밀한 분석에 기반한 사전대책 마련이 시급하며, 기후 예측력 향상은 물론 조기경보 시스템 강화, 전담 조직 확대, 예산 강화 등 전방위적인 대응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복지를 위한 조건으로서 안전의 우선 확보에 나서고 이를 위해 과감한 예산 투자와 체계적 예방을 우선순위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재난이 닥친 뒤에야 예산을 투입하는 방식으로는 기후 위기 시대에 대응할 수 없는 만큼 복구 중심의 예산 구조를 예방 중심으로 대전환해야 한다"며 "안전이 확보되면 복지도 향상된다는 개념으로 인식을 바꿔야 하며, 이제는 보다 적극적으로 안전을 투자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도 곧 태풍이 닥칠 것으로 예상되지만 물막이판 설치율조차 저조한 것이 현실"이라고 우려했다.
기상 이변의 반복으로 밥상 물가도 위협받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19일 오후 5시 신고 기준으로 벼, 논콩, 멜론, 수박, 고추 등 농작물 2만4247ha가 침수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서울 전체 면적(6만500㏊)의 약 39.6% 수준이다.
가축은 소 60두, 돼지 829두 닭 93만수 등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닭의 경우 '괴물 장마'로 불린 2023년 장마철 당시(91만2000마리)를 이미 넘어서 사실상 역대 최악의 피해를 입었다. 정확한 피해 면적은 향후 지자체 정밀조사 등을 통해 결정된다.
폭염으로 가격이 크게 뛴 작물들이 이번 집중호우로 직격탄을 맞으면서 밥상 물가가 한층 더 들썩일 조짐을 보인다.
대표적으로 수박은 폭염으로 생산량이 줄어든 가운데 수요까지 늘어나 가격이 고공행진 중인 상황에서, 이번 폭우로 침수 피해까지 입어 추가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 18일 기준 수박 1통의 소매가격은 3만866원으로 한 달 전보다 41.09%, 1년 전보다 44.67% 급등했다. 수박값은 지난 15일 3만65원으로 올해 처음 3만원을 돌파하며 천정부지로 치솟는 상황이다.
같은 날 기준 배추 1포기 소매가격은 4950원으로 전달 대비 43.15% 뛰었고 1년 전보다는 2.53% 올랐다. 깻잎 100g 소매가는 2661원으로 전월 대비 9.42%, 전년 대비 14.95% 상승했다.
축산물도 비상이다. 7월 들어 폭염으로 닭 집단 폐사가 이어진데다 이번 폭우로 90만수 이상이 피해를 본 것으로 잠정 집계되면서 추가 인상 가격 인상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지난 20일 기준 특란 30구 가격은 6984원으로 전년 대비 2.67%, 평년 대비 3.48% 올랐다.
정부가 '민생회복 소비쿠폰' 등을 통해 움츠러든 소비심리 진작에 나선 가운데 이번 폭우가 찬물을 끼얹는 형국이다. 지역 단위 소비 진작을 노린 이번 정책이 수해 복구와 물가 불안이라는 복병을 만나서면서 그 효과가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국가 재정 운용에 대한 부담도 가중될 전망이다. 폭우로 인한 대규모 피해가 속출하자 각 지자체는 앞다퉈 정부에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요청했고 이재명 대통령도 신속한 선포를 지시한 상태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되면 복구비 일부가 국비로 전환되고 피해 주민들에게는 재난지원금과 함께 국세·지방세 납부 유예, 공공요금 감면 등의 간접 혜택이 추가로 지원된다. 정부가 이미 올해 두 차례에 걸친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한 데 이어 이번 폭우 대응에도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통상 하절기에는 수확철을 맞아 농산물이 안정되는 경향이 있으나 기후변화로 오히려 가격이 상승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물가 불안을 자극할 우려가 크다"고 내다봤다.
이어 "이미 유동성이 확대되고 여러 생산 원가가 상승해 물가가 불안한 상황에서 추가적인 물가 자극은 경기 회복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며 "특히 원가 상승에 따른 비용 인플레이션은 스태그플레이션을 유발해 경기나 경제성장률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최은서 기자